먼저 질문들이 들어올 걸 예상하고 다른 얘기들부터 하고 넘어가자면
원래 그동안 펩의 시티에서의 시즌 큰 그림은 초반에 최대한 벌어두고 그 벌어놓은 승점이나 경기 수 차이의 우위를 살리는 게 일반적이었다면 (물론 리버풀이란 존재로 그러지 못한 시즌도 있음. 모르고 하는 소리 아님) 이번 시즌은 그동안의 시즌과 다르다는 게 맹점임.
EPL 특성상 2주 이상의 휴식기라는 게 없고 리그 컵이나 FA 컵이 일정이 정해진 일정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리그 일정을 미루기도 하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스쿼드를 두 개로 갈라서 운영을 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바르셀로나나 바이에른 뮌헨 때처럼 시즌 중반에 피지컬 트레이닝의 강도를 확 높여버릴 수가 없었죠. 만약에 그 짓을 했으면 그 시즌은 200% 망했을 거임.
헌데 이번 시즌은 월드컵이 껴있고 넉넉한 휴식기를 줬고 홀란드를 비롯해 월드컵에 아예 가지 않은 선수들이나 조기 탈락한 선수들도 있기에 제가 펩이어도 이번 시즌은 조금 뒤쳐지더라도. 따라가는 입장이 되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막바지에 거의 모든 경기를 다 잡겠다는 큰 그림을 그렸을 겁니다. 물론 뒤쳐지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죠. 근데 이러나저러나 선수들이 이 리듬을 적응하고 받아들인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 거임.
왜냐. 다른 팀들도 월드컵 여파가 있을 거고 그에 맞춰서 어떤 팀은 그 전에 리듬을 확 끌어올려 앞서가고자 했을 거고 또 어떤 팀은 부상이란 변수를 최대한 방지하고자 난이도를 극단적으로 낮췄을 수도 있고 각 팀들마다 시즌 관리법 자체가 변동의 폭이 클 게 분명하니깐.
시즌 중반에 뻔한 축구를 한다고 해서 볼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뭔가 뜨문뜨문 보면서 각이 보이는 거 같을 때 예측을 하고 흐름을 읽었던 건 제가 생각하는 큰 그림이 맞다면 조금 더 재밌는 축구와 매 경기를 기대할만한 요소들을 주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관념을 제일 좋아하는 건 맞지만 전 그것만 보는 사람도 아니고 그런 관점으로만 축구를 보고 해석해서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님. 그런 거였음 첼시랑 마드리드는 왜 보고 지금 펩의 효율성을 뭣하러 칭찬하겠습니까.
아무튼 훈련 강도를 높이려고 생각해둔 시기에 분명히 전술 훈련 강도도 더더욱 높였을 거라고 봅니다. 어떤 스포츠든 몸이 무거울 때 더 움직임을 강조하면서 몸이 정상화될 때 그게 자연스럽게 되게끔 만드는 경우도 있구요. (어쩌면 이게 시즌 중반 잡음의 원인이었을 수도 있구요.)
이제 훈련 루틴은 회복 훈련 위주로 돌아갈 것 같다는 예상을 한 것도 회복 훈련은 보통 3일 루틴으로 짜여지는데 한 경기, 한 경기를 다 이겨나간다는 마인드셋으로 임할 게 분명해서 최대한 휴식과 회복에 집중하고 신경 조직이 최대한 회복됐을 때 부상 방지, 변수 통제 등의 조건이 걸린 가벼운 연습 게임 정도로 잔디 적응, 실전 감각 유지, 긴장감 유지 등 정도로만 끝낼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 만약에 회복이 더디거나 문제가 있다면 라인업을 살짝 바꾸거나 저 연습 게임 조차도 안 하고 그냥 경기로만 풀어나갈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결국 현재 지옥의 일정은 회복 훈련의 비중을 높이는 와중에 경기 자체가 실전 연습의 연장선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세필드 전도 그런 느낌이 강했다고 보구요.
거기다 챔스 원정 등이 껴있고 잉글랜드 내에서 원정을 치르러 이동을 하더라도 그 시간 자체가 소모되는 거기 때문에 현재의 일정을 컴팩트한 스쿼드로 보내려면 훈련 강도를 기존과 비슷하게 유지하면 아마 부상자들이 주기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보고. 이제 와서 전술 훈련을 한다하더라도 이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미 밀린 선수들이 기존 주전 선수들의 이해도만큼 올라올 가능성 자체가 없다고 봅니다. 이미 이번 시즌은 한 1월 즈음에 실력제로 서열이 다 정리됐을 거임.
리그 경기야 다가오는 아스날 전이 사실상 6점짜리 경기기 때문에 제일 중요하겠지만 나머지 경기들도 우승 향방이 가려지기 전까진 하나하나 다 중요하기에 컵 대회 4강 상대가 세필드였던 건 어떻게 보면 매우 운이 좋은 게 아닐까 싶음. 1부 리그 어떤 팀이든 만났다면 이런 라인업을 내는 건 불가능했을 거라고 봅니다. 진짜 다행인 부분.
술을 좀 많이 마시고 봐서 기억이 꽤 많이 날아가긴 했는데 포인트가 될만한 것들은 크게 5가지 정도였던 거 같음.
- 그릴리쉬-마레즈가 버려진 상태에서 경기를 해결해줄 수 있냐. (못하면 문제 있는 거긴 함)
- 아칸지가 쓰리백 중앙
- 워커와 라포르테
- 베르나르도 실바와 귄도간 피보테로 기능
- 3-3-1-3
정도일텐데 아칸지는 이 정도 상대를 갖고 판단하기엔 아스날도 그렇고 챔스에서 만날 상대들이 수준 자체가 다르다고 봐서 판단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라포르테도 딱히 평가할 게 있었나 싶음.
워커는 전 여전히 비슷한 생각입니다. 쓸 수 있는데 쓰려면 오른쪽에 베르나르도 실바, 포든을 싹 다 깔아서 써야한다고 봅니다. 포지셔닝이나 판단력, 동료들과의 상호 작용, 이기적, 이타적 등의 문제기 때문에 사실상 실력으로 밀린 게 맞다고 보고 라인업이 고정될 거란 얘기를 했을 때도 단순히 풀백/센터백의 개념이 아니라 베르나르도 실바의 활용 방안 (향후 돌아올 포든 역시 감안) 에 따라 달라질 여지가 있다고 봤던 게 제일 컸음.
계속해서 문제가 되는 건 워커 본인의 문제도 문제지만 연쇄적으로 마레즈의 쓰임새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뤄진다는 점. 마레즈랑 그릴리쉬가 동시에 나오면 양 측면을 이 둘에게 온전히 맡기고 버려두면서 나머지 선수들이 그 외 공간들을 활용해줘야 하는데 마레즈가 포지셔닝 할 자리를 워커가 해버리거나 끼어들면서 마레즈는 자꾸 중앙으로 들어오거나 한참 밑으로 내려와서 볼을 받게 되는 게 생각 이상의 문제라는 겁니다.
심지어 워커가 직선적으로 달리면서 마레즈가 길을 터주느라 한 박자 늦은 포지셔닝도 하면서 꼬이기도 하죠.
저번 시즌이면 이게 지적 사항이 아니었을 건데 이번 시즌 워커가 필드 위에서 할 역할은 풀백이 아니라 센터백입니다. 결국 본인이 센터백이란 이해를 하지 못하고 그 방식을 실전에서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무슨 이유를 갖다붙여도 아칸지 > 워커라는 소리고 이건 워커가 안 좋은 선수라는 게 아니라 현재의 전술전략에서 본인에게 요구하는 역할과 이해를 100% 해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일반적인 풀백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칸지는 워커를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죠. 아칸지는 종적으로 자주 달리다 백프로 부상으로 누울테니까요. 근데 지금 그게 아니니까 워커가 적은 빈도 수로 기용되는 거고 80분 이후에 교체로 들어가는 겁니다.
라포르테도 오늘 경기는 뭐 판단할 게 없긴 하지만 센터백치고 볼을 잘 다루고 잘 차고 패스 루트를 기가 막히게 보니까 고평가 되는 거 같은데 반대로 아케가 너무 저평가 되고 있음. 아무래도 지난 시즌까지 펩이 추구하던 축구가 만들어 낸 고정관념 같은데 현 시점에서 더 중요한 건 수비수 본연의 면모임.
결국 워커의 문제는 본인이 센터백이 주 임무고 풀백으로 기능하는 건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라는 걸 이해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해결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볼을 계속 소유하고 압도한 경기들에서 이런 점들이 보여서 그렇지. 비슷한 수준의 팀들과 붙었을 때 저러면 속도로 따라가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베르나르도 실바와 귄도간은 피보테로 기능할 때 한 명은 더 적극적으로 유도를 하고 2대1 상황이나 상대의 압박을 스스로 벗겨내고 극복하면서 전체적으로 간격과 대형을 더 과감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고 한 명은 상대적으로 더 다양하고 빠른 패스 루트를 찾아내고 그걸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거겠죠.
이 둘의 위치 변화 (+ 워커) 에 따라서 대형이 계속 3-3-1-3, 3-2-4-1, 4-3-3, 4-2-3-1 등 계속 바뀌었는데 현재 대부분의 선수들은 펩이 지시하는 것들을 충분히 이행할 수 있기에 뭔가 전술적 변형을 줄만한 힌트나 아케의 부재를 메울만한 묘수를 발견했냐 못했냐도 중요할 듯 합니다. 3대0 되자마자 그냥 꺼버렸는데 홀란드나 그릴리쉬도 빼면서 포든도 선발로 써봤으면 조금 더 의미있는 경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뭐 펩의 판단이 맞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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