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0 상황이 오래갔으면 알바레즈를 넣으면서 어떻게든 동점을 만드려고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1대1이 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든 상황에서 더 이상 무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펩이 원하는 것들을 어느 정도 얻어가지 않았나 싶음. 이겼다면 최상이었을 건데 무승부도 뭐 불만족보단 만족에 가깝지 않을까.
그리고 펩은 원래 토너먼트에서 원정이나 1차전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거나 승부수를 보기 좋은 시점이라는 판단이 들지 않으면 무리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임. 토너먼트 원정 성적이 아쉬운 것도 본인의 축구 철학, 관점, 관념 등을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2차전에 그것들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함이 기본 원칙임.
그래서 기본적으로 깔아 두는 베이스는 원정이나 1차전에서 무승부를 기준으로 두고 2차전에서 상대를 조급하게 만들어 본인들의 축구를 한다라는 거죠. 반대로 1차전에서 빠르게 경기 결과를 얻어오면 2차전에선 또 무리를 하지 않음.
허나 소기의 성과를 얻었음에도 내용적인 면을 보면 또 마냥 만족스럽다고 할 순 없음.
첫째로 아케의 부재가 생각 이상으로 크게 드러났다는 점.
둘째로 아케의 부재로 인해 좌우 센터백 겸 유사시에 풀백이 되는 선수들이 왼쪽-왼발, 오른쪽-오른발이 아니라 싹 다 오른발 잡이가 되면서 귄도간의 위치가 지나치게 좌측면으로 고정이 되어버리고 데 브라이너가 순간적으로 양 측면 윙포워드가 되는 3-2-4-1 변형의 핵심 중 하나가 아예 작동이 되지 않았음.
아칸지는 익숙하지 않은 자리에서 왼발 사용이 강제되니 포지셔닝, 몸의 각도, 패스 세기, 거리감 등에서 문제를 드러냈으며 (아칸지 패스 미스 딱 4번 했는데 3번이 왼발 패스 각이었음) 워커는 원래 판단이 빠른 선수가 아니고 원투 터치 플레이도 능하지 않다 보니 (바로 내줘야 할 장면들도 내주지 않고 치고 달리다가 내줌) 사실상 양 측면 선수들의 첫 패스가 데 브라이너나 귄도간한테 쏠쏠하게 들어가는 게 아니라 패스 속도가 빠른 공격이 나오지 않았죠.
셋째로 이것을 간파한 마드리드가 과감한 전방 압박을 시도해 뒷공간을 내주는 게 아니라 베르나르도 실바를 활용해 데 브라이너 프리맨 전술전략을 쓸 것을 확신이라도 한 듯이 카마빙가 주변에 초장부터 다수의 인원들을 협력 수비로 넣어 대응을 했는데 이것에 전반전 내내 흔들렸다는 점.
넷째로 연장선으로 그릴리쉬가 조금 더 적극적이었다면 이것을 타개하는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었을 건데 적극성이 떨어졌던 게 아쉬웠음. 물론 아칸지의 문제들과 귄도간이 빠른 포지셔닝이 가능하지 않은 선수기에 그릴리쉬가 조금 더 후방을 신경 써야 했고 그것을 의식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보나 카르바할의 약점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경기라는 건 아쉬울 수밖에 없는 듯.
다섯째로 계속 말씀드려 오지만 이번 시즌 펩의 전술전략은 효율성임. 위에서 조기에 막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지만 그것이 안 된다고 느껴질 경우에 최대한 뒤로 빠져서 안전하게 수비를 해내고 패스 속도를 살려 두세 번의 패스로 상대 박스 안으로 들어가 공략한다라는 건데 이런 유도에 마드리드 선수들이 거의 낚이질 않았음. 2차전에 아케가 돌아오는 게 아니라면 동선 조정을 하든 라인업을 바꾸든 뭔가 수를 내놓긴 해야 할 듯함.
간략한 평은 이 정도로 하고 몇 가지 사항들을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 워커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님. 질문들이 들어올 것을 가정하고 미리 답변하자면 워커는 오늘 전혀 잘하지 않았음.
억까가 아니라 비니시우스 억제에 성공하지 못한 거고 원온원을 몇 번 막아냈다고 90분 내내 잘 막은 게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이건 굉장히 이상하고 단편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하구요. 결국 이전 경기들 그리고 이번 경기 초장부터 보인 포지셔닝, 판단력 미스 등이 쌓이고 쌓여서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음.
상대 선수를 잘 막았다는 건 얼마나 상대 선수의 장점이 덜 나오게 했냐가 핵심 사항인데 그런 면에서 보면 스톤스를 칭찬해야지. 워커를 칭찬할 일이 아님. 이제 몇 가지를 살펴보죠.
비니시우스를 제어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 바르셀로나의 아라우호와 그 외 선수들의 협력 수비 과정을 보면 핵심은 횡드리블을 못 치게 하고 엔드 라인으로 빠지게 만들어서 왼발을 쓰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벤제마와 상호 작용이 불가능하고 박스로 들어가는 경로를 사전에 막는 거기 때문에 비니시우스의 공격을 단발성 공격으로 만들 수 있는 거죠.
이게 왜 중요하냐면 비니시우스와 벤제마 (+모드리치와 호드리구까지) 는 측면을 단발성으로 쓰는 선수들이 아니고 횡드리블의 시발점이나 다른 선수들의 패스 속도에 비례해 박스로 들어가는 진입 경로기에 이것을 제어해 내면 플레이 스타일상 효율이 극단적으로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비니시우스의 왼발 사용을 제일 많이 이끌어내고 가능하면 박스가 아니라 측면으로 빠지게 만들어 낸 선수는 워커가 아니라 스톤스입니다. 오히려 워커가 막을 때는 순간적으로 놓치거나 중앙으로 들어가는 걸 사전에 막지 못해서 비니시우스가 편하게 움직이고 오른발을 쓰는 데도 문제를 못 느꼈죠. 이건 잘 막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전에 짚었던 실점 장면도 결국 워커가 본인이 센터백이라는 걸 인지를 못하고 스스로 판단해서 들어왔다 나갔다를 능숙하게 하지 못하니까 벌어진 일입니다.
원온원 얘기를 하면 그거에만 집중하는데 이건 하나의 요소입니다. 이 변형 전술의 핵심은 네 명의 센터백과 로드리의 상호 작용도 중요하지만 양 측면에 서는 센터백이 본인이 나가야 할 때와 지연시켜야 할 때. 아니면 들어와야 할 때 등을 제일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라포르테는 일단 볼 소유라는 전제 조건을 유지하려고 습관적으로 튀어나가고 박는다면 워커는 이 모든 것들을 다 애매하게 한다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후자가 덜 위험하니 워커 기용은 어떤 보조가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한 거죠.
댓글들 볼 때마다 스토퍼라고 하던데 그런 이상한 개념이 아니라 (스토퍼, 스위퍼, 커맨더, 파이터 이런 건 그냥 다 허상입니다.) 그냥 센터백입니다. 본인 뒤에는 아무도 없는 거고 센터백을 뒤에 두고 풀백으로서 1차적으로 원온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베르나르도 실바도 마찬가집니다. 측면 포워드로 기용하는 건 원온원으로 뚫냐 마냐가 제1 요소가 아닙니다. 왜 자꾸 그거에 몰두하는지 모르겠는데 상대 풀백과 원온원을 마주하면서 스탠딩 스킬이나 기술적으로 베르나르도 실바를 당해내지 못할 때 협력 수비를 이끌어내면 프리맨을 만들 수 있다가 제1 요소라는 거죠. 마레즈도 퍼스트 터치가 좋고 드리블을 하는 선수지만 베르나르도 실바와 다르게 상대의 협력 수비를 대응하는 면에선 한참 떨어지고 다수의 선수들을 유도하는데 능하지 않으니 베르나르도 실바가 기용되는 겁니다.
뮌헨은 알폰소 데이비스가 베르나르도 실바랑 원온원을 하다가 계속 뚫리거나 데 브라이너가 오른쪽으로 빠지면 프리맨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니 그제서야 고레츠카가 협력 수비를 붙었다면 오늘 마드리드는 그것을 원천 봉쇄했다는 겁니다.
아칸지도 왼발을 못 쓰는 선수가 아니고 왼발로 짧은 패스는 어느 정도 하는 편인데 왼쪽에서 왼발을 쓰면서 시간을 줄이고 효율을 높여주는 건 아예 못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정반대의 각도에서 주발이 아닌 약발로 패스를 정확하게 해야 하니 빠르게 바로바로 판단이 안 되는 거 같은데 귄도간으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단 뭔가 수를 써야 할 것 같다고 느끼네요.
마지막으로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와 자주 붙으면서 현재의 라인업이 본인들의 축구를 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네요.
알라바와 카마빙가가 왼발잡이로서 좌측면을 지원해 주니까 비니시우스와 모드리치의 동선 낭비가 많이 줄어들었고 무엇보다 카마빙가가 웬만하면 백패스를 하지 않고 앞을 보고 패싱을 하기 때문에 과감한 선택지를 하나 더 만들어 주기도 하고 적은 기회에서도 훨씬 더 좋은 찬스가 나오는 것도 있다고 봅니다.
여전히 크로스와 카르바할이 커다란 약점이라고 생각하는데 호드리구의 존재로 카르바할이 오른쪽 메인 루트가 아니고 연쇄적으로 발베르데를 크로스와 카르바할 사이에 둬서 필요하면 센터백 겸 풀백 역할까지 시키면서 보조하고 있기에 덜 드러나고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크로스를 어떻게 공략하냐가 중요할 것 같은데 시티 입장에서 현재 앞선에서 누군가를 선발에서 빼버리는 게 그렇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보이지 않아서 전술적 변형을 어느 시기에 적절하게 써서 공략하냐가 2차전 승부를 가르는 제일 큰 요소일 것 같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