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단순한 과몰입의 영역이 아니라 그냥 삶의 일부. 더 나아가면 삶 그 자체임. 물론 지역 연고, 국가 간의 갈등, 쌓인 감정 등도 상대적으로 더 센 것도 있고 강성 팬들 (훌리건이나 울트라스라 불리는 버러지들 포함) 의 성격 자체가 매우 거칠고 감정적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 그 이상의 것들이 심어져 있음.
보통 축구를 비롯한 주류 스포츠들이 신분 상승의 유일한 기회이자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수단 (요즘은 롤을 비롯한 세계화가 잘 된 게임들도 이렇게 평가 받는다곤 하던데 가난한 애들이 게임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지기는 쉽지 않으니) 인데 더 넓게 보면 진짜 찢어지게 가난한 애들은 마을에서 아니면 진짜 조금만 만져주면 보장된 특급 재능인데 누군가는 밀어줘야 하면 도시에서 도움을 받아서 그 사람들 전체를 책임져주는 경우도 있음.
알렉시스 산체스도 그중 하나죠. 얘는 우리나라로 치면 르까프, 프로스펙스 같은 중저가 브랜드는 커녕 니코보코, 스베누급 같은 오렌지 팩토리 (아직도 있나요??) 에서 만원도 안 하는 축구화 살 돈도 없고 (그럼 밥 먹을 돈이 없어서) 볼 구하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는데 시장이 재능을 알아보고 축구화도 사주고 지역 프로팀 다리 놔주고 해서 프로 선수가 된 케이스임. 본인도 바르셀로나 합류 후 인터뷰에서 주변에서 안 도와줬음 세차원이나 하고 있었을 거라고 했죠.
칠레의 산체스뿐만 아니라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남미에서 이름 날린 애들 중 이런 케이스의 애들이 결코 적지 않음. 네이마르도 친구들 데리고 다니는 게 어렸을 때 가난했는데 여기저기서 도움을 많이 받은 케이스라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어렸을 때 길거리에 있는 볼 아무거나 다 주워와서 방에다 다 갖다 쳐박아두고 그거 하나씩 꺼내서 축구하고 그랬다죠.
그러다 보니 친척이 아니더라도 뭔가 이러저러해서 얽혀있는 사람들도 많고 그 지역 또 좁게는 그 마을 출신이면 보통 어떻게 성장했는지 아니깐 그런 것도 응원과 몰입의 근거가 되기도 하죠. 바르셀로나가 진성 카탈란 유스 출신들에게 열광하는 것의 최소 4-5배는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내 자식이나 조카 아니면 내가 사실상 키운 거나 다름없는 동생이 성공한 그런 느낌?
아프리카도 살짝 이런 느낌이 있는데 걔네는 유럽 스카우터들이 재능의 크기에 따라서 계약금을 꽤 높은 수준으로 보장해 주거나 가족들 대우 보장해 주면서 데려가는 경우도 있으니까 조금 다른 부분들이 있구요.
그래서 반대로 축구 선수들에게 악감정을 품은 사람들도 많고 화내러 오는 사람들도 많음. 유독 남미 쪽이 치안 문제가 심각하지만 다른 대륙에 비해서 축구 선수나 축구 선수의 애인, 가족 등을 노린 강도, 범죄 심하면 살인 등이 많은 것도 그것도 어떻게 보면 돈을 구하고 신분 상승의 수단 중 하나기 때문. 범죄를 옹호하는 게 아니라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고 못 배운 애들이 많은데 저런 사람들은 돈 많은 걸 그냥 딱 봐도 알 수 있으니 타겟으로 삼기 좋으니까요.
종종 카카를 다수의 브라질리언들의 급하락의 반대 예시로 언급하는데 이게 잘못된 게 카카는 가난하게 자라질 않아서 애초에 다양한 환경을 경험해 보고 다른 스포츠도 경험해 본 케이스라 비교 대상이 아님.
보통 동기 부여가 떨어지고 돈이 많아지고 취미가 생기고 못 먹어본 음식들도 먹어보고 그러면 흔들리는 브라질리언을 비롯한 남미 선수들 대다수의 하락세 특징은 가난해서 뭘 못해본 애들이 늦게 새로운 것들이 주는 재미를 느끼는 거죠. 물론 그렇지 않은 선수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이쪽에 가까웠음.
딩요도 파리 시절에 루이스 페르난데스란 감독이 다른 선수들의 불만도 다 무시하면서 (저 감독 자서전에도 나옴) 딩요 사람 만들겠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 줬는데도 (스콜라리가 진심으로 리스펙 해줌. 아무도 하려 하지 않고 할 수 없는 걸 시도한 사람이라고) 그 파리 도시에 흩어져 있는 유혹들을 못 이겨내서 엄청나게 놀았다고 하죠. 아니나 다를까 바르셀로나에서 동기 부여를 잃어버리니 술 마시고 여자들이랑 놀고 훈련 빠지고 언론들은 피해 다니고 자기한테 살갑게 구는 사람들한테는 술 사주고 클럽에서 골든벨 울리고 그랬죠.
근데 요즘은 프로 클럽들이 경제적으로 이전에 비해서는 좋아진 편이고 환경 자체가 많이 개선된 편이라 싹이 보이면 일단 데려가서 자체적으로 교육도 하고 최대한 삐딱선 안 타게끔 키우는 편이긴 하죠.
브라질도 펠레법 때문에 클럽들도 적자를 항상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이때쯤 계약이 지저분해지기 시작했음. 스폰서들이 지분을 사거나 투자를 하거나 에이전트랑 엮이거나 등등) 써드 파티나 에이전시, 뒷돈 관련해서 말도 많아지고 유럽 클럽들이 알아서 피하다 보니 요즘은 전체적으로 예전의 브라질 리그로 돌아갔죠. 유망주 크게 한 탕 땡겨서 그 돈으로 해 먹을 거 해 먹고. 다시 또 그러고.
그래서 그런지 돈놀이 하는 놈들이 축구가 아니라 중남미에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애들을 그냥 아예 직접적으로 접근해서 해 먹는 경우가 늘었다는 기사도 본 기억이 나는데 뭐 이건 여기서 할 얘긴 아닌 것 같고.
게다가 근래 브라질-아르헨티나의 감정적인 요인이 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브라질 대통령 룰라임. 예전에도 룰라가 메시 칭찬을 엄청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땐 당시 감독이었던 둥가부터 해서 브라질리언 레전드들이 아예 들고 일어섰던 적이 있습니다. 저런 사람을 괜히 대통령으로 뽑았다라는 말도 공개적으로 막 할 정도로 화제가 됐던 사건이었는데요.
이번에도 메시 발롱도르 수상을 축하하며 발언을 했었죠. 그중 일부 발언은 자국 선수들이 따라가야 할 모범적인 사례로 메시를 꼽았죠.
근데 그때는 아르헨티나가 타이틀을 한참을 못 얻었을 때고 브라질은 그래도 꺾이기 직전이었죠. 게다가 메시를 당시 세계 최고라 치켜세우던 룰라의 발언과 다르게 메시는 당시에는 정점을 노리던 선수였지. 찍은 선수가 아니었음. 당연히 그런 선수를 세계 최고라 박아놓고 자국 선수들을 까니 좋은 반응이 나올 수가 없었던 것도 맞았죠.
이번에는 반대로 브라질은 거의 20년째 자존심을 구기고 있는데 일관성 있게 자국 선수들을 깎아내리고 (룰라의 관점에서 그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범적이지 못하다에 있다고 보니까) 아르헨티나 선수를 칭찬하며 보고 배우라는 건 사실 옳은 조언이어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라는 거죠.
이렇듯 남미의 축구 문화는 이런저런 요소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합쳐져서 이뤄진 문화이자 삶이라 사실 공감대를 형성하긴 쉽지 않음. 무엇보다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음. 아마 경기장에 온 대다수는 감정적으로 이미 어느 정도 상해있는 상태로 왔었을 수도 있구요.
그래서 그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봐야 하는데 일단 그래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긴 하니까요.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요소가 되는 것도 아니구요.
보통은 왜 저렇게까지 옘병을 하지 싶은데 사실 그들에겐 그게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고. 남미 리그나 리베르타도레스 보면 어제 경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난리부르스 치는 경기들도 종종 나옵니다. 감정적으로 극에 달해있는 경기들은 보기 좀 그럴 때가 예전에도 있었음. 옛날 엘클하고는 좀 다른 느낌. 그건 일부러 그러는 쪽에 가깝다면 이건 또 정반대랄까.
남미 리그 보시는 분들이 유독 유망주에 포커스를 많이 두는 것도 그 재미가 제일 크기 때문. 경기들 자체는 생각보다 지루한 경기들도 많고 남미가 주는 이미지와는 다른 양상의 경기들도 생각 이상으로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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