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보테와 2 피보테에 대한 얘기를 예전에도 한번 했었던 것 같은데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필드를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바뀌었고 당연히 이론은 물론이고. 실전도 많이 바뀌었음.
개인적으로 스페인식 4번이든 독일식 6번이든 이런 분류는 직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라이트 팬들이나 대중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관계자들 (굳이 자기 이론이나 선수 입장에선 자신의 플레이를 구구절절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 에겐 일부분 필요할 수 있으나 축구를 보는 입장에선 그렇게 쓸모 있는 분류라고 보지 않는 편임.
반대로 이런 분류들이 보는 시선들을 망치죠. 얜 6번이야. 얜 8번이야. 같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들과 거기서 생겨나는 고정관념들.
중요한 건 왜 1 피보테가 사라지고 있냐죠. 기술적으로 부족한 선수들이 등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공간에 대한 접근과 해석 그리고 그것을 실전으로 적용해 내는 상대 팀들의 대응책을 넘어서기 위해선 이제 반대로 그게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의 전술전략이니까 하지 않는 거뿐임.
아주 좋은 예시들이 있죠. 챠비가 중도 부임 시즌을 지나 그다음 시즌 부스케츠 한 명으로 하프 라인을 넘어가려다가 개막전에서 호되게 당한 적이 있음. 그러고 그 경기 후에 후방의 선수들을 늘리고 라인 간의 간격을 벌리고 롱패스로 확 넘겼죠.
루쵸는 부스케츠를 반대로 아예 위에다 끌어올려 썼음. 코케를 비롯한 후방 선수들에게 더 부지런하고 헌신적인 움직임을 주문하되 부스케츠는 조금 더 앞으로 나가 패스 루트의 다변화를 이끌어 주던 거죠.
이것들이 보여주는 건 단순한 부스케츠의 쓰임새가 아니라 이제 상대적 강팀을 마주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약점들이 후방에 있거나 특정 지점에 몰려있다면 라인을 유동적으로 가져가면서 공략할 수 있다는 거임. 협력 수비를 유지시킬 수 있는 무언가만 있으면 그걸 10분 아니면 일시적인 오버 페이스 아니면 45분. 또는 그 이상으로 후반 교체 승부수를 던지기 전까지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조금씩 팀들이 바뀌어 나가고 있었음. 쓰리백을 써서 애초에 패스 루트를 늘리거나 좌우 포워드들이 조금 더 내려와 주거나 좌우 풀백들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능수능란하게 하거나 등등... 여기서 하나 더 늘어난 게 미드필드들이나 센터백들이 공수에서 더 능동적이고 더 부드러운 상호 작용을 요구받고 있는 게 현재의 흐름인 거죠.
게다가 현재의 1 피보테와 2 피보테는 주변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것들도 과거와 많이 다름. 더 이상 어떤 1-2명의 선수에게 제한적이거나 한쪽에 치우친 주문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필드 위의 전원에게 높은 수준의 상호 작용을 요구하고 있죠.
몇 달 전에 '로드리 저평가?' 란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제가 어떻게 생각하냐와는 상관 없이 이 선수의 가치는 펩이 감독이 아니고, 시티가 아닌 곳에서 본인의 알맹이가 크다는 걸 증명하면 알아서 평가는 자리를 찾아갈 거라고 얘기한 적이 있음.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구요.
로드리가 피보테라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그냥 팬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로드리가 이 정도의 선수로 올라선 시기가 그렇게 길지가 않음. 엄밀히 말하면 월드컵에서 센터백을 뛰기 전후 로드리는 그냥 다른 사람임.
결국 스페인에선 피보테라서 억까를 당했다는 걸 증명한 게 아니라 시티가 아닌 곳에서도 본인이 주가 돼서 상호 작용을 이끌어 낼 수 있고 때론 그게 부족한 선수들이 필드 위에 있어도 본인이 그것을 충분히 커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자리인 거죠. 이건 피보테랑 아무 상관이 없음. 애초에 로드리는 일반적인 피보테가 아닌데요.
베르나르도 실바가 없으면, 시티 수준의 후방 자원들이 없으면 로드리의 알맹이가 빛나기 힘들 거다라고 본 게 다수의 시선이었을 뿐이죠. 그걸 보기 좋게 깬 거고 이젠 인정을 받는 거죠. 그러니 본인이 시스템이란 말을 했던 거고 이건 자신은 어느 위치에서든, 누구랑도 상호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구요.
8핀의 미드필드인 줄 알았는데 C타입이더라. 그리고 필요하면 5핀도 되고 8핀으로도 돌아가더라. 이게 현재의 로드리겠죠.
솔직히 부스케츠 들이미는 한심한 소리는 의미가 없는 것 같고 (비교 자체가 무의미함) 로드리 보면서 느꼈던 건 그의 급성장에선 퍼거슨이 왜 그렇게 빨리 포기했는지 알 것 같았던 피케 (얘도 08-09 때 마르케즈 보다가 보면 그냥 숨이 막히고 답답했는데 몇 달 만에 사람이 달라졌음) 의 급성장이 느껴졌고.
왜 그를 응원하는 시티의 팬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나머지는 그러지 못하냐는 점에서 유로 08 이전까지 바르셀로나 경기를 띄엄띄엄 보던 사람들이 바라보던 챠비와 유사함을 많이 느꼈음. 유로가 증명의 장이 된 것도 챠비랑 유사하구요.
앞으로 남은 건 더 가혹한 환경에서 증명하거나 더 완성에 가까운 환경에서 이 이상을 보여줄 수 있냐겠죠. 다양한 환경을 겪어보지 못하거나 극한의 이해도를 요구하거나 이질적인 환경에서 급성장한 선수들이 겪는 전형적인 평가 흐름이라 생각함.
제가 어떻게 평가하냐는 별개의 문제임. 그게 궁금하시면 시티 글들 찾아보시면 됩니다. 그냥 느꼈던 것들을 일부분 얘기하는 거뿐. 누구랑도 비교할 생각 없으니 그런 질문하셔도 답글 안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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