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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Writing

드림팀 이야기 2

by 다스다스 2026. 1. 1.







1994-95 - 라우드럽은 결국 저번 시즌 후반기 주요 경기들에서 싹 다 제외당하며 크루이프와의 관계가 완전히 박살이 나버림.





라우드럽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했고 발다노가 매우 원했던 선수기도 해서 아다리가 맞아 레알 마드리드 행을 선택. 보드진도 원했고 선수도 원했지만 감독이 컷해버린 재계약이라 사정을 아는 팬들은 그를 배신자 취급하지 않았음.





아모르, 펩, 페레르 이후 저번 시즌에 떠오른 세르지 바르후안 그리고 슈퍼 재능으로 주목받던 데 라 페냐 정도를 빼면 유스에서도 더 이상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들은 없었고 크루이프는 다시 한번 방출과 영입으로 칼질을 시작함.





알렉산코와 같이 팀의 기둥이자 에스페리아 항명 등 보드진과의 불화 속에서도 살아남은 주비사레타, 주전-슈퍼 서브-골이 필요할 때만 넣는 서브로 위상이 계속 떨어지며 효용성이 박살 난 살리나스, 비슷하게 위상이 떡락한 고이코체아 등도 과감하게 쳐내며 월드컵 스타 하지를 비롯해 아벨라르도, 에스쿠르사, 호세 마리, 로페테기 (그 로페테기 맞음) 등을 데려옴.





문제는 모든 영역에서 팀이 다 망했다는 거. 주비사레타의 빈자리는 부스케츠의 아버지인 카를레스가 거의 도맡았지만 재앙이었고 수비수들은 득점을 하러 사방팔방 뛰어다녀야 했으며 그나마 멀쩡한 미드필드 라인은 펩을 제외한 나머지가 노쇠화하기 시작하면서 기복이 너무 심했고 체력이 되지 않았음.





포워드는 더 심했는데 하지는 마드리드 시절보다 더 재앙인 모습을 보여줬고 러시아 포워드였던 코르니프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호마리우는 계속된 크루이프와의 마찰, 자유롭지 못한 바르셀로나 생활 등에 지쳐 결국 겨울에 브라질로 돌아가는 걸 택해버림.





호마리우와 같이 밥값을 하던 스토이치코프 외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크루이프는 여기서 본인의 아들 조르디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며 돌파구를 찾았으나 오히려 이게 최악의 수가 돼버렸음.





조르디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부족했고 스탯 사기꾼에 가까웠는데 아들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버려졌을 선수인데 크루이프는 절대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음. 지역 언론들은 이걸로 크루이프를 괴롭히기 시작...





한편 2년 연속 역전 우승을 내주고 (마드리드 팬들은 테네리페의 비극이라 표현하곤 함) 그다음 시즌까지 말아먹은 레알 마드리드는 테네리페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마드리드의 레전드 호르헤 발다노를 새 감독으로 선임하고 레돈도, 아마비스카, 카니자레스, 키케 플로레스 (그 키케 맞음) 등을 영입하고 시즌 도중에 라울을 콜업해버림.





사실상 라몬 멘도사 의장의 필살기 시즌이었는데 발다노의 마드리드에게 처참하게 털리고 라우드럽의 기량도 살아있음이 드러나며 크루이프는 더 이상 지역 언론들에게 보호받지 못했음.





시즌 초반에 열리는 걸로 바뀐 수페르코파에선 사라고사한테 깜노우에서 5실점을 하는 쓰레기 경기를 하면서 불안한 출발을 보였고.





시즌 초반부터 원정만 가면 털리는 일이 더 많았고 이 시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경기는 챔피언스 리그 맨유와의 조별 예선 홈 경기. 조르디 크루이프가 드물게 밥값을 했던 경기기도 함. 그래서 퍼거슨의 눈엔 괜찮게 보였을 지도...





리가는 간신히 4위. 챔스는 간신히 조별 예선을 뚫고 (저 4대0 경기 아니었음 떨어졌음) 8강에서 파리한테 탈락. 후반기 엘 클라시코를 이긴 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 정도로 엉망이었던 시즌. 드림팀은 사라졌음이 확인된 시즌.





1995-96 - 크루이프는 다시 한번 팀을 갈아엎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실행에 옮김.





쿠만, 스토이치코프 (피구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정리), 치키, 에우제비오, 이글레시아스 등 저번 시즌 중용하던 선수들 대부분을 내보냈고 피구, 포페스쿠, 프로시네스키 그리고 크루이프가 찾던 장신 포워드 코드로를 영입함.





프로시네스키는 마드리드 시절보다 더 처참했고 코드로는 드림팀이 잘 돌아가던 시즌들에도 만날 때마다 잘했고 매 시즌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골을 넣으면서 94-95 시즌에 완전히 만개한 재능이었는데 바르셀로나 행을 택하며 커리어가 박살 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지옥행 비행기를 타며 망해버림.





그리고 코드로는 크루이프를 증오하는 수준을 넘어서 바르셀로나 자체를 싫어하는 정도로 변해버림. 이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들이나 소시에다드 출신 선수들에게 바르셀로나 행을 추천하지 않음.





리가 팀이 22팀으로 늘어난 시즌이었음에도 득점을 더럽게 못했고 스탯 사기꾼 2였던 오스카 가르시아 (B팀 감독 하던 사람 맞음) 가 리가 최다 득점자일 정도로 엉망이었던 시즌.





2시즌 동안 크루이프가 시도했던 영입들 중 성공한 영입은 단 두 건. 아벨라르도와 피구. 보드진이 관여했던 피구를 빼버리면 아벨라르도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다 망해버렸다는 소리.





게다가 이 시즌은 50년에 한 번 나올 재능이란 극찬을 받던 데 라 페냐가 월반하면서 퍼스트 팀에 올라온 시즌이었는데 크루이프는 데 라 페냐가 망가질 것을 우려해 교체로 조기에 빼거나 늦게 넣거나 때론 벤치 행, 때론 관중석에 보내버리는 등 아껴 쓰려 했는데 보드진과 지역 언론들, 깜노우에 오는 팬들은 그런 크루이프를 이해하지 못했음.





아들인 조르디 역시 폭망해버리고 누네스는 후반기 카탈루냐 더비에서 비기고 크루이프를 경질하기로 결정함. 문제는 크루이프는 그것도 모르고 이 시즌도 실패했다 생각하고 또 다른 여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가 원했던 선수들은 지단과 베르캄프, 맥마나만......





누네스는 나중에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크루이프에게 저 얘기를 듣자마자 더 이상 그를 믿어선 안 되겠다 판단하고 경질을 결정했고 부의장이었던 가스파르트에게 일을 처리하라 지시했다고 밝혔었음. 두 시즌 동안 그를 믿고 목숨줄을 맡겼던 누네스에게 남은 건 빚과 부진한 성적밖에 없었으니..





크루이프와 누네스의 사이가 나빠진 건 누네스는 불편한 얘기들은 항상 가스파르트를 통해서 했고 본인은 좋은 이미지만 챙기려 했던 게 컸음.





재밌는 건 이 노답 시즌에 엘클을 한 번도 지지 않았다는 거고 (1승 1무) 코드로가 리가에서 유일하게 밥값을 한 경기가 후반기 깜노우 엘클이었다는 거. 또 다른 건 코파 델 레이는 코드로의 무대였는데 결승전에선 아예 빼버리는 강수를 뒀다가 아틀레티코한테 연장전 승부 끝에 패배를 함.





유일한 수확은 피구가 진짜였다는 거. 그거 말곤 아무것도 얻은 게 없는 시즌.





개인적인 생각 - 사실 크루이프는 드림팀이 잘 나갈 때 돈으로는 타이틀을 살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하고 다녔다 알려져 있는데 바르셀로나는 그를 지원하기 위해 수많은 영입들을 시도했고 선수 하나하나가 비싸지 않거나 유명하지 않은 선수들이 껴있던 거지. 지출은 당시 바르셀로나 기준으로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알려져 있음.





그리고 마지막 시즌 그가 요청한 영입들은 당시 바르셀로나가 감당할 수 없는 (또는 상당한 빚을 져야 하는) 영입들이기도 했음. 물론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누네스가 나중에 밝혔던 거처럼 2년 동안 대부분 실패한 감독의 눈을 믿기도 부담스러웠을 거고.





무엇보다 그는 매우 독단적이었고 언론들을 매우 잘 이용하는 감독이었는데 루이스 미야부터 해서 라우드럽 등 몇몇 선수들은 그런 크루이프의 방식을 증오하곤 했음. 이후로 가면 무링요와 유사하게 선수들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비판하고 그걸 동기 부여로 이용하는 등의 방식도 자주 썼던 감독.





게다가 당시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던 소시오들을 사로잡으려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였던 크루이프를 의장인 누네스가 무지성으로 믿어줬기에 드림팀이 가능했던 거지. 대다수의 팀들은 크루이프에게 그 정도의 시간을 줄 수 없었음.





아약스 보드진 역시 독단적이었던 감독 크루이프와는 마찰이 심했던 걸로 알려짐. (반 바스텐을 아약스 보드진과 상의 없이 팔아버리고 모든 걸 본인 멋대로 다 결정함)





이론을 선수들에게 이해시키고 실전으로 이끌어 내는 좋은 능력을 가진 감독이었지만 생각보단 환경을 많이 타는 감독이었다는 사실.





물론 그 전권으로 그는 팀의 모든 것을 다 바꿔버리고 새로운 문화와 관념을 만들고 모든 카테고리의 선수들에게 새로운 방식을 가르침. 그게 현재까지 이어져 온 셈.





바르셀로나의 역사는 감독 크루이프 이전과 이후로 나뉨. 이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런 면에선 사실 어떤 감독보다도 고평가 받을 부분 역시 존재함.





그런 점에서 오래된 팬들은 드림팀 시절의 기억들을 갖고 바르셀로나를 응원하는 것. 드림팀 이전까지 바르셀로나는 피스후안의 저주라 할 정도로 유러피언 컵이 절실한 클럽이었고. 마드리드를 연속으로 엿 먹이며 비극이란 말을 붙이게 만든 적도 없었음.





이런 것들이 공존하니 감독 크루이프는 고평가와 저평가가 동시에 있는 것.





재밌는 포인트들 - 라우드럽은 크루이프가 경질된 시즌을 끝으로 마드리드를 떠나며 일본 행을 선택. 크루이프와 마찬가지로 본인을 원했던 발다노와 불화가 터지며 명단 제외를 당하고 훈련에서도 배제당하는 등의 일을 겪음. (루쵸도 발다노한테 당해서 재계약 거부하고 바르셀로나 행 선택)





이후 커리어의 마지막을 아약스에서 보내는데 크루이프는 뜬금없이 98 월드컵을 앞두고 라우드럽을 극찬하며 화해의 신호를 보냈었음.





허나 나중에 레이카르트의 후임 감독 3인에서 크루이프는 조언자 입장에서 라우드럽을 아예 배제했음. 무링요는 절대 안 되고 그럴 바엔 레이카르트가 1년을 더 해야 하며 바르셀로나는 펩을 써야 한다고 주장.





라우드럽은 똑같이 크루이프와 사이가 틀어져 마드리드로 간 루이스 미야와 사단을 이뤄 감독직을 했었음. 금방 헤어졌지만.





조르디 크루이프는 본인 아버지를 그렇게 대하는 바르셀로나를 떠나고 싶어했으며 당시 기준으로 꽤 후한 이적료로 맨유 행이 이뤄지나 반 시즌 만에 망하며 가짜 재능이 다시 한번 드러남.





이후 14번을 달고 알라베스의 돌풍의 주역 중 한 명으로 부활하나 했지만 마지막 불꽃이었음. 뭐가 있는 건지 카이저슬라우테른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는데 큰 역할을 하며 알라베스의 유로파 결승 진출에 기여하기도 했음.





바케로는 바르셀로나와 소시에다드의 레전드로서 감독직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던 와중에 쿠만의 부름에 응해 발렌시아의 수석 코치로 가 쿠만과 같이 발렌시아를 지옥으로 보내버림. 이후 변방 리그들에서 가는 팀마다 말아먹으며 유스 쪽으로 노선을 변경.





바르셀로나는 크루이프의 후임으로 반 할을 원했는데 반 할이 아약스와의 계약 기간을 지키고 싶어 하는 바람에 1년 땜빵용으로 롭슨을 데려다 씀.





크루이프는 렉사흐의 조언을 받아들여 누네스와의 일을 더 이상 크게 만들지 않았고 마지막 홈 경기에서 아들 조르디과 함께 기립 박수를 받음. 이후 조언자 포지션으로 빠지나 반 할 부임 후 그리고 가스파르트 때까지 거리를 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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