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는 건데 확실히 옛날부터 퍼진 말들은 번역 오류로 인해 잘못 알려진 것들이 많은 거 같음.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해외 축구 활성화가 이뤄지던 시기에 좋은 자료들이 일본어판들이 많았던 편이라 자극적인 번역이나 일본어로 한 번 거쳐서 넘어온 번역들이 많다 보니 그런 거 같다 느끼는데요.
크루이프도 사실 한 적이 없는 발언들이나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는데 일본어식 표현으로 바뀌면서 그게 크루이프의 발언들로 포장되어서 재생산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음.
본인 책인 Me gusta el futbol 에서 얘기했던 부분들을 일부 발췌해 왔음. 이제 그만 옮겨야겠음. 이러다 야금야금 책 다 옮길 판. 원래 이런 자유로운 말투가 아닌데 편의상 제가 그렇게 의역했음.
"볼 점유에 대해서도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참 많다 느껴. 볼을 가지고 있으면 중요한 건 그걸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야 하는 거지. 우리가 볼을 소유하고 있는 동안 상대는 볼이 없는 거고 공격할 기회도, 득점할 기회도 없는 거지. 이 의미는 우리가 경기를 지배하고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볼을 소유하고 있으니 상대는 뺏으려고 할 거고 이런 과정들을 통해 비로소 공간이란 게 생겨나는 거지. 볼을 가지고 있을 때 단순히 소유만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순환시키냐가 관건이야. 예를 들어 1대0 으로 이기고 있을 때 볼을 계속해서 소유하려 하면 상대는 더 과감하게 볼을 뺏으려 할 거고 그만큼 우리 입장에선 공간이 더 많이 나겠지."
"축구의 또 다른 점은 볼 앞쪽에 너무 많은 선수들을 세워둬선 안 된다는 거야. 그리고 볼이 우리 진영에서, 하프 라인 아래에서 오래 머물면 안 된다는 거지. 왜일까? 이론적으로 수비수들은 기술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미드필드들이 볼을 더 많이 만지고 그들이 볼을 순환시키는 게 훨씬 나으니까. 그래서 기술을 갖춘 미드필드들을 보유하고 항상 상대보다 미드필드를 1명 더 필드 위에 세우는 게 중요해."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팀들이 2명의 미드필드만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려고 하지. 감독 시절에 난 항상 4명의 미드필드를 기용하려 했어. 그리고 그 4명은 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이었지. 그리고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나는 어떤 선수에게도 볼을 따라가면서 뛰어다니게 하지 않았다는 거야. 에우제비오도, 과르디올라도 누구에게도 그런 건 시키지 않았지. 물론 이 과정 속에서 선수들에게 자유롭게 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아주 중요해. 결국 볼을 가지고 뭔가를 해야 하니까."
"가끔 오래된 팬들이 내게 내가 이끌던 팀과 다르게 내가 뛰던 60년대 후반부터의 아약스와 네덜란드 대표팀이 놀랍도록 자유롭게 플레이 했다며 얘기해 줄 때가 있어. 그렇게 보이지만 사실 그때나 내가 감독으로 팀을 이끌 때나 지금이나 그게 질서 속의 자유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돼. 누구나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지만 그건 딱 한 명이었다는 거지."
"예를 들어 카이저 (크루이프의 선수 시절 동료) 가 자유를 누리기로 결정했다면 적어도 5명은 그의 뒤를 봐줘야 했고. 한 명의 미드필드가 올라가 슈팅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한 명의 공격수는 그 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내려와야 한다는 거야. 이런 게 간격과 대형. 라인의 문제지."
"과르디올라, 라우드럽, 바케로, 에우제비오가 있던 바르셀로나로 다시 예를 들어보자. 각자의 위치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아. 근데 그렇게 볼을 순환시키다가 에우제비오가 내가 아까부터 말한 자유를 누릴 권한을 쓰기 위해 움직이면 그와 가까이 있는 측면 수비수가 에우제비오의 자리를 채워주러 와야 하는 거지. 이렇게 끊임없이 채워주면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거야. 축구에서 선수가 뛰어야 하는 거리는 최대 10미터 정도여야 해."
"다시 이 팀을 예로 들어보자. 그럼 가장 수비적인 역할은 누구였을까? 바로 호마리우야. 왜일까? 호마리우가 가진, 그만 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지. 상대 골키퍼가 볼을 잡은 위치에서 볼을 던지거나 차게 만들어야 하는 거야. 호마리우가 이렇게 하기만 해 줘도 우리 수비진은 10미터를 더 전진하고 간격을 더 좁힐 수 있는 거지. 호마리우가 졸고 있거나 불평을 하거나 심판에게 항의를 하고 있거나 정신이 딴 데 팔려 집중력을 잃었다면 골키퍼가 올라오는 것도 그대로 허용했을 거고 편하게 볼을 던지거나 차는 것도 다 허용했겠지. 그럼 우리 팀 전체는 10미터를 후퇴해야 하는 거야."
"반면에 그가 늘 활동적이고 골키퍼가 뭘 하든 어떻게든 방해하기 위해 압박한다면 공간이 단축되고 우리의 라인이 좁아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공간을 차지하거나 공략할 수 있게 되겠지."
공격이 최선의 수비다나 최전방 공격수가 수비수다 이런 거 다 그냥 줄여서 말하기 위해, 번역을 조금 더 편하게 하기 위해 나온 거지. 크루이프가 그렇게 직접적으로, 쎄게 그런 표현들을 하진 않았음.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번역이 그렇게 된 것들이 많아서 그게 정설처럼 굳어진 거죠.
드사이 발언도 본인은 1 피보테에 그런 유형의 선수를 세우지 않는다는 건데 무슨 축구 교육을 해준다 이런 거 덧붙여놓고 그랬죠. 이 책 내용에도 나오죠. 볼을 따라가거나 그거 뺏을 준비만 하는 선수는 기용하려 하지 않는다고.
오히려 드사이로 크루이프가 비판받았던 건 호마리우와 비교하면서 그 정도의 가치를 가진 선수가 아니라 깠던 거임. 바르셀로나는 호마리우 영입에 큰돈을 쓸 때 밀란은 제한적인 선수를 사는데 그 정도 돈을 쓴다는 거였죠.
이탈리아 언론들에게 조롱을 당했던 것도 당시 바르셀로나의 전력이 호마리우 영입으로 완성됐다 판단하던 크루이프의 오만함이 제일 컸고. 렉사흐도 나중에 밝혔죠. 라우드럽과의 불화는 바르셀로나에게 이로운 일이 아니었다고.
2 미드필드 기용을 비판하던 것도 그런 식으로 기용하면 상호 작용이 안 이뤄져 공수 구분이 되니 4-2-3-1 의 단조로움을 비판하던 거임.
그냥 색깔이 강하고 자신의 철학이 확고하던 양반이었음. 관중들이 재밌어하는 축구의 기준이 공격적인 방향성의 토탈 풋볼이라 그게 아니면 의미 없다 하던 게 어떤 사람들에겐 거부감을 샀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