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 얘기했던 건데 자세하게 설명한 적은 없는 거 같아서.
파벌 논란은 반 할이 오고 나서 바로 생긴 게 아니라 98-99 시즌 겨울에 데 부어 형제가 오고 나서부터임. 전권을 받고 온 반 할은 바르셀로나의 스쿼드에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생길 때마다 본인이 원하는 선수들 명단을 보드진에게 줬는데 대부분이 다 아약스 출신, 네덜란드 출신이었음. 심지어 보드진 픽들은 철저하게 배제하거나 쓰다가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하면 아예 배제시켜버림.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어버린 건 99-00 리트마넨 영입.
문제는 프랭크 데 부어는 오자마자 잘한 게 아니라 한참이 지나서야 그나마 밥값을 한 선수였는데 아무리 못해도, 무슨 실수를 해도 반 할은 데 부어를 빼지 않았음. 그러니 팬들과 언론들은 데 부어까지 공격하기 시작했고 99-00 시즌 전반기 사건사고가 연달아 터지고 반 할은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과 말싸움까지 벌이는 일이 벌어짐.
첫 번째 사건은 99-00 시즌 초반 루이스 엔리케 벤치행이었음. 루쵸는 나중에 은퇴한 후 반 할의 그런 결정들이 이해가 간다 했지만 당시에는 본인에게 이유를 설명해 주러 온 반 할과 대화를 거부했고 바로 2경기 명단 제외를 당함. 이 와중에도 네덜란드 선수들의 입지는 확고했고 특히 반 할은 젠덴을 더더욱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함.
두 번째 사건은 쌓이고 쌓인 히바우두와의 정면충돌. 이미 저번 시즌에도 불만이 있었던 히바우두는 이 시즌엔 아예 대놓고 중앙에서 뛰고 싶다고 반 할에게 들이박음.
반 할은 처음에는 이 시즌 필살 전술이었던 3-3-1-3 에서 1 의 자리에 두기도 하면서 맞춰주긴 했지만 정작 그럴 땐 히바우두가 못했고 반 할은 더 이상 히바우두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무시함. 결국 이런 전술전략적 충돌이 전반기 성적을 최악으로 이끌어 내면서 99년 11월 전 대회 무승 (챔스 2무, 리가 3패) 이라는 참사를 내버림.
세 번째 사건은 이 과정 속에서도 부상 복귀한 데 부어를 그냥 계속 썼다는 거. 결국 12월에도 부진한 흐름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자 데 부어는 어디서든 욕을 먹고 있었고 (본인이 스스로 밝히기도 함. 반 할의 아들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욕먹고 다녔다고) 반 할은 결국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과 말싸움을 벌이고 기자들을 향해 너넨 다 쓰레기들이야 라고 지르고 기자회견장을 나가는 일이 벌어짐.
네 번째 사건... 결국 데 부어를 라인업에서 빼버리는 선택을 한 반 할이었는데 문제는 그 차선책들 역시 더치맨들을 쓰는 거였음.
당시 이제 막 담금질을 하던 푸욜을 오른쪽 풀백으로 쓰면서 라이지허 센터백을 쓰거나 (아니면 반대로 쓰거나) 전 시즌 다리 골절로 시즌 아웃 당하고 원래 구렸던 기량이 더 구려진 보가르데를 쓴다던가 하는 짓을 하면서 믿을맨 아벨라르도를 사지로 밀어 넣어버림. 보드진이 프리로 주워온 프레드릭 데후 역시 몇 번 쓰다가 갑자기 안 썼음.
다섯 번째 사건은 당시 주전 골키퍼였던 헤스프의 기량 논란. 사실 잘하는 선수도 아니었고 네덜란드에서도 서드 키퍼였고 이미 노장에 접어든 선수여서 더 기대할 것도 없었고 진짜 막을 것도 드물게 막고 먹히는 건 잘 먹히는 그런 키퍼였는데 반 할의 무한 신뢰 속에서 뛰었음.
이것도 논란이 되니 갑자기 유망주였던 아르나우를 리가와 챔스에서 쓰곤 했는데 유망주가 잘할 리가 있나... 결국 원상 복귀. 물론 그가 헤스프 대신 원래 원하던 선수는 반 데 사르였음. 차선책 영입이었던 셈.
리트마넨은 이미 망가진 선수였는데 데려온 거라 온 거 자체가 논란이었음. 바르셀로나에서도 무릎 문제로 말이 많았던 선수. 한 것도 없었고. 근데도 쓸 수 있으면 써서 논란을 사서 만들어 낸 게 반 할.
결국 반등할래 말래 하다가 후반기 엘클에서 3대0 참패를 당하는 참사가 벌어지며 다시 5위로 추락... 반 할은 여론이 완전히 박살 나고 그를 필살기로 데려온 의장 누네스까지 구석에 몰리는 상황이 벌어짐. 반 할은 여기서 승부수를 던짐. 98-99 전술전략으로 돌아가되 젠덴과 로날드 데 부어를 과감하게 쓰는 걸로 바꾸고 프랭크 데 부어를 다시 복귀시키고 루이스 엔리케-펩-코쿠의 3 미드필드를 그냥 죽어라 씀.
경기력이 서서히 좋아지면서 연승 가도를 달리던 와중에 루쵸가 시즌 아웃을 당해버렸고. 다시 밸런스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4월부터 다시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함. 결국 다시 꺼내든 게 시즌 초반 쓰던 3-3-1-3. 먹혀드나 했는데 4강 1차전 피구가 카드 누적으로 결장하면서 메스타야에서 그냥 숨도 못 쉬고 얻어맞으면서 시즌은 사실상 끝나버림. 팬들은 4강 2차전 깜노우에서 야유로 화답...
이렇게 사건사고들이 쌓이면서 스쿼드는 3분할 (네덜란드-스페인-나머지) 로 갈라지고. 반 할은 성적 부진과 불화로 팀을 떠나고 누네스는 책임을 지고 의장직을 사임함. 문제는 다음 시즌에도 오렌지는 또 오고. 나가는 선수들은 얼마 되지 않았음. 여전히 이어지는 와중에 감독은 몇 년 동안 유스나 돌보던 허수아비였고. 이런 분위기에 적응을 못하던 이방인 선수들은 바르셀로나 생활이 끔찍했다 얘기함.
이중 쁘띠는 에고가 굉장했던 선수 (월드컵 위너라는 걸 틈만 나면 자랑했다 함) 였는데 그런 그를 모르는 스태프들이나 선수들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하고 바르셀로나는 축구가 아니라 정치를 하는 곳이라는 게 너무 힘들었다 했음.
게다가 지역 감정이 심했던 시기라 카탈란을 쓰는 게 생활에 더 편리할 수도 있다는 동료들의 조언을 쁘띠는 철저한 편 가르기와 강압적인 지역주의 문화로 받아들였고. 결국 적응을 못하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바르셀로나 행을 후회한다고 밝히고 맨유로 가는 게 더 행복했을 거라고 박아버림.
쁘띠란 선수 자체도 적응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던 선수여서 말이 많았지만 당시에도 이후에도 지적받았던 건 어느 정도 편 가르기가 있었고 세라 페레르는 허수아비라 아무런 중재도 하지 않았고 선수들도 저번 시즌의 문제점이 본인들이 아닌 다른 요소들이 컸다 생각하는 게 컸음.
세라 페레르는 선수들의 요구 사항을 다 받아주려다 이도 저도 아닌 행동들을 많이 했고 그게 팀을 더더욱 빠르게 망하게 만들어 버림. 결국 해결사로 등장한 건 크루이프 다음 가는 레전드였던 렉사흐. 렉사흐는 기가 막히게 내부 수습을 이뤄냈는데 이미 팀은 다 망해버린 상황. 이때가 펩이 본인이 떠나야 할 때라고 인터뷰를 박았던 시기.
이 파벌 논란 속에서도 끝까지 남은 더치맨들은 그럼에도 바르셀로나가 짱이야. 라고 하면서 남았던 선수들. 반 할이 2기 망친 거보다 1기로 성적 못낸 거로 욕을 더 많이 먹는 이유기도 하고. 당시 전력이 매우 좋은 팀 중 하나였는데 챔스는 조별 예선 (셰브첸코한테 놀아난 시즌)-조별 예선 (깜노우 결승인데...)-4강이었고 리가 2개, 코파 1개가 전부였던 팀.
물론 99-00 코파 델 레이는 4강 1차전을 이미 진 상태긴 했지만 일정 변경 요청을 무시 당하고 부전패 당한 게 컸음. 가만 보면 이때 발렌시아가 앞길을 자주 막았던 거 같음. 98-99 코파 델 레이도 발렌시아한테 떨어졌고. 99-00 챔스 4강도 발렌시아한테 떨어졌고. 그렇게 바르셀로나 박살내던 멘디에타가 세리에 가서 폭망하고 바르셀로나 와선 반 할 밑에서 풀백 뛰던 웃긴 이야기도 있고.
크루이프와 쿠만으로 더치맨 하면 바르셀로나란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바르셀로나의 더치맨은 암흑기를 상징하는 거임. 크루이프도 선수로선 성적을 잘 낸 선수가 아니기도 하고. 여러 차례 얘기했던 부분. 많이 거쳐가서 그렇지. 막상 뭔가를 이뤄내거나 정점을 찍은 선수는 거의 없다는 거.
그리고 히바우두가 그렇게 원하던 중앙화는 피구의 부재를 더 눈에 띄게 하고 팀을 챔스 경쟁이나 간신히 하는 팀으로 떨어뜨리는데 큰 기여를 했음. 애초에 전술적 중심으론 어울리지 않던 선수.
어딜 가든 크루이프 드림팀 얘기는 해도 반 할 1기 얘기는 잘 안 하는 게 바르셀로나가 처음으로 뻣뻣한 모가지를 풀고 명장 모셔온 건데 막상 좋았던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럼. 끽해봐야 98-99 후반기 정도? 게다가 파벌 논란이 스페인 어느 팀이나 다 있었던 시기지만 여기가 유독 심했던 거라 창피한 일이기도 했고.
재밌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쁘띠도 전 한편으론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어서 종종 언급했던 거임. 물론 본인 잘못이 아예 없단 쁘띠의 태도는 별로긴 하죠. 당시 동료들도 몇 번 맞저격 했던 적이 있음.